1. 문제의 소재
부동산이든 물건거래든,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때 가장 먼저 오가는 돈이 바로 계약금입니다.
그런데 이 계약금, 생각보다 성격이 복잡합니다.‘그냥 먼저 주는 돈’정도로 알고 있다가, 막상 계약을 깨야 할 상황이 오면 “얼마를 포기해야 하지?”, “이미 낸 것만 날리면 되는 거 아냐?”라고 우와좌왕 당황하게 됩니다.
특히 실무에서 자주 터지는 상황이 있습니다.
“매매대금 1억 원, 계약금 1,000만 원으로 정한 계약. 매수인이 계약금 1,000만 원 중 500만 원만 지급한 상태에서 계약을 해제하고 싶어 한다. 이미 낸 500만 원만 포기하면 끝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이 글에서 계약금의 법적 성격부터 이 사례의 해결까지, 관련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한 번에 정리하겠습니다.
2. 계약금은 하나가 아니다 – 계약금의 3 + 1 가지 성격
계약금은 당사자가 어떻게 약정했는지에 따라 여러 성격을 동시에 가질 수 있습니다. 서로 배타적인 개념이 아니라 겹쳐서 존재한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1) 증약금(證約金) – 계약이 성립했다는 증거로서의 성격입니다. 모든 계약금은 최소한 이 성격을 가집니다. 즉, 계약금이 오갔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 계약했다”는 증표가 됩니다.
2) 해약금(解約金) – 해제권을 유보하는 대가로서의 성격입니다. 민법 제565조 제1항은‘당사자 간에 다른 약정이 없는 한’계약금을 해약금으로 기능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해약금 배제 특약이 없는 한 실무상 대부분의 계약금은 해약금으로 기능합니다. 뒤에서 볼 “계약금을 포기하거나 배액을 상환하고 해제한다”는 이야기가 바로 이 성격에서 나옵니다.
3) 위약금(違約金) – 채무불이행이 있을 때 몰수하거나 배액을 물어주기로 한성격입니다. 중요한 점은, 위약금은 당사자 사이에 별도의 특약(위약금 약정)이 있어야만 인정된다는 것입니다. 특약이 없으면 계약금이 자동으로 위약금이 되지는 않습니다. 위약금 약정이 있으면 민법 제398조 제4항에 따라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추정됩니다. 다만 계약서에 손해배상 예정 조항이 따로 있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위약벌로 해석될 수도 있는데, 위약벌로 인정되면 법원의 감액이 불가능하다는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대법원 2022. 7. 21.선고 2018다248855, 248862 전원합의체 판결).
4) 선급금(先給金) – 매매대금의 일부를 미리 지급하는 성격입니다. 계약이 정상적으로 이행되면 계약금은 대금의 일부로 충당됩니다.
정리하면, 모든 계약금은 증약금이고, 민법상 원칙적으로 해약금으로 기능하며, 위약금이 되려면 별도 특약이 필요하다. 이 세 문장이 계약금 성격론의 뼈대입니다.
3. 민법 제565조 – 해약금 해제는 어떻게 작동하나?
계약금을 이용한 해제의 근거 조문은 민법 제565조입니다.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민법 제565조 제1항).
1) 당사자 한쪽이 이행에 착수할 때까지,
2) 교부자(계약금을 준 매수인)는 이를 포기하고,
3) 수령자(계약금을 받은 매도인)는 그 배액을 상환하여,
4) 계약을 해제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두 가지 조건에 주목해야 합니다.
1)‘이행에 착수하기 전’이어야 합니다. 이 요건은 이행에 착수한 당사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즉, 어느 한 쪽이 이행에 착수하면 그 상대방은 해약금 해제를 할 수 없게 됩니다(민법 제565조 제1항). 예컨대 매수인이 중도금을 지급하면 이는 이행의 착수이므로, 그때부터는 매도인은 배액상환 방식으로 계약을 해제할 수 없게 됩니다.
2)‘포기 또는 배액상환’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공짜로 빠져나올 수는 없습니다. 매수인은 계약금을 날리고, 매도인은 받은 것의 두 배를 토해내야 비로소 해제가 됩니다. 또한 수령자가 해제의 의사표시만 하고 배액을 실제로 제공하지 않으면 해약금에 기한 해제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도 주의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계약금을 아직 다 내지 않은 상태라면 어떻게 될까요? 바로 여기서 우리 사례의 핵심 쟁점이 나옵니다.
4. 핵심 쟁점 – 계약금을‘일부만’지급했을 때
계약금이 전액 오간 상태라면 위 공식이 그대로 적용되어 다툼이 적습니다. 문제는 일부만 지급된 어정쩡한 상태입니다. 이에 관해 대법원은 두 개의 중요한 판결을 남겼습니다.
1) 계약금계약은‘요물계약’이다(대법원2008. 3. 13. 선고 2007다73611 판결)
계약금을 주고받기로 한 약정(계약금계약)은 주된 매매계약과는 별개의 계약이며, 그 성질은 요물계약(要物契約)입니다.
요물계약이란 돈이 실제로 건네져야 비로소 성립하는 계약을 말합니다. 단지‘계약금을 주기로 약속만 한’단계에서는 아직 계약금계약이 성립하지 않은 것입니다.
대법원은 이 판결에서 다음과 같이 판시하였습니다.
“당사자가 계약금의 일부만을 먼저 지급하고 잔액은 나중에 지급하기로 약정하거나 계약금 전부를 나중에 지급하기로 약정한 경우, 교부자가 계약금의 잔금 또는 전부를 지급하지 아니하는 한 계약금계약은 성립하지 아니하므로 당사자가 임의로 주계약을 해제할 수는 없다.”
이 법리의 함의는 큽니다. 계약금 일부만 오간 단계 에서는 아직‘해약금에 의한 해제권’자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즉, 이미 낸 일부 금액만 포기한다고 해서 마음대로 해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 가지 중요한 점을 덧붙이면, 계약금계약이 성립하지 않더라도 주된 매매계약 자체의 효력에는 영향이 없습니다. 계약금계약이 불성립했다는 것은 단지 해약금에 의한 임의 해제권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의미일 뿐, 매매계약이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2) 배액상환·포기의 기준은‘실제 지급액’이 아니라 ‘약정 계약금’이다(대법원2015. 4. 23.선고 2014다231378 판결)
그렇다면 만약 해약금 해제를 한다고 할 때, 그 기준 금액은 실제로 오간 돈일까요, 아니면 약정한 계약금 전액일까요?
이 사건의 사실관계는 이렇습니다.
매매대금 11억 원짜리 아파트에 계약금은 1억 1,000만 원으로 정했는데, 계약 당일 1,000만 원만 지급되고 나머지 1억 원은 다음 날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매도인이 변심하여 다음 날 계좌를 폐쇄하고 계약 파기를 통보했습니다. 매도인은“내가 실제로 받은 건 1,000만 원이니, 그 배액인 2,000만 원만 돌려주면 해제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먼저 계약금 전액이 지급된 것으로 보아 매도인의 해약금 해제 주장을 배척하면서, 가정적 판단으로 다음과 같이도 판시하였습니다.
“설령 원고가 계약금 중 일부인 1,000만 원만을 지급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계약금 일부만 지급된 경우 수령자가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해약금의 기준이 되는 금원은 ‘실제 교부받은 계약금’이 아니라 ‘약정 계약금’이라고 봄이 타당하다. ‘실제 교부받은 계약금’의 배액만을 상환하여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면 이는 당사자가 일정한 금액을 계약금으로 정한 의사에 반하게 될 뿐 아니라, 교부받은 금원이 소액일 경우에는 사실상 계약을 자유로이 해제할 수 있어 계약의 구속력이 약화되는 결과가 되어 부당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사건에서 매도인의 이행거절을 이유로 한 매수인의 채무불이행 해제가 적법하다고 인정되었고, 손해배상액의 예정(약정 계약금 1억 1,000만 원)이 부당히 과다하다고 보아 법원이 감액하여 처리하였습니다. 이처럼 손해배상액의 예정은 법원이 감액할 수 있다는 점도 실무상 중요합니다.
두 판결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계약금이 일부만 오간 단계에서는 ① 계약금계약이 아직 성립하지 않아 해약금 해제권이 곧바로 생기지 않으며(2007다73611의 주된 판시), ② 설령 해약금 법리를 적용하더라도 그 기준은 실제 지급액이 아니라 약정 계약금 전액이다(2014다231378의 가정적 판시).
5. 질문에 대한 해답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매매대금 1억 원, 계약금 1,000만 원. 매수인이 500만 원만 낸 상태에서 해제하고 싶다면?
매수인 입장에서“이미 낸 500만 원만 포기하면 된다”는 생각은 틀립니다. 계약금계약은 요물계약이므로, 약정 계약금 1,000만 원이 전부 지급되기 전인 현재는 계약금계약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따라서 해약금에 기한 해제권 자체가 아직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나아가 설령 해약금 법리를 적용하더라도, 해약금의 기준은 실제 낸 500만 원이 아니라 약정 계약금 1,000만 원입니다. 따라서 매수인이 해약금에 기해 손 털고 나가려면, 실무상 약정 계약금 1,000만 원 상당을 포기해야 합니다. 즉 이미 낸 500만 원을 포기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나머지 500만 원까지 부담해야 하는 결과가 됩니다(상대방이 나머지 계약금 지급을 구하거나 그 상당액의 손해를 주장할 수 있음).
반대로 매도인이 변심한 경우라면, 같은 논리가 매도인에게도 적용됩니다. 2007다73611 판결의 주된 법리에 따르면, 매도인도 계약금계약이 성립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해약금 해제를 할 수 없습니다. 설령 해제가 가능하다고 보더라도 그 기준은 실제 받은 500만 원이 아니라 약정 계약금 1,000만 원의 배액인 2,000만 원이 됩니다. 소액만 받았다는 이유로 손쉽게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이 판례의 태도입니다.
만약 매수인이 그냥 잔금 협의를 거부하고 계약을 방치하면, 이 경우는 해약금 해제가 아니라 채무불이행 문제로 넘어갑니다. 주된 매매계약 자체는 유효하게 성립해 있으므로, 매수인이 정당한 이유 없이 이행을 거절하면 매도인은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이때 위약금 특약이 있으면 계약금 상당액(약정 계약금 기준)이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작동합니다. 다만 이 경우에도 법원은 손해배상액의 예정이 부당히 과다하다고 인정되면 감액할 수 있습니다. 위약금 특약이 없으면 매도인은 실제로 입증한 손해만 배상받을 수 있습니다.
참고로 일반적인 부동산 매매계약서에는“계약금을 손해배상의 기준으로 본다”는 문구가 포함되어 있어 채무불이행 시 계약금 상당액 청구가 가능한 경우가 많으므로, 계약서 문언을 꼼꼼히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상황별로 정리하면, 매수인이 계약에서 빠져나오고 싶다면, 가장 깔끔한 방법은 이행에 착수하기 전에 약정 계약금 전액(이 사례에서는 1,000만 원)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상대방과 해제 합의를 하는 것입니다. 이미 낸 500만 원만 포기하는 방식은 판례상 인정되기 어렵다는 점을 전제로 협상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이미 이행에 착수(중도금 수령 등)한 뒤라면 해약금 해제 자체가 불가능하므로, 이때는 합의해제 외에는 방법이 마땅치 않습니다.
6. 마무리
분쟁을 예방하려면 계약서 단계에서 미리 정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예컨대 “계약금 일부만 지급된 경우 해제 시 정산 방법”, “위약금 약정”등을 명시해 두면, 판례 법리로 다투기 전에 계약서 문언으로 해결됩니다.
계약금은 가급적 한 번에 전액 지급하여 요물계약을 완성해 두는 것도 법률관계를 단순화하는 방법입니다.
이미 다툼이 생겼다면, 상대방의 언행이‘이행 거절’에 해당하는지, 어느 쪽이 먼저 ‘이행에 착수’했는지, 위약금 특약이 있는지에 따라 결론이 크게 달라집니다. 끝.
작성·검토 : 양홍규 변호사
공증인가 법무법인 화동 대표변호사 / 공인중개사 / 사법통역사
최종 검토일 : 2026. 8. 3.
이 글은 일반적인 법률정보이며, 구체적인 사건의 법률의견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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