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사태를 지켜보면서

시민의 목소리를 듣는 정치, 시민의 일상을 지키는 국가

프랑스의 거리가 다시 격랑에 휩싸였다. 생활비 부담과 공공서비스에 대한 불만으로 학생과 노동자 등이 거리로 나섰고, 일부 지역에서는 약탈과 기물 파손이 벌어졌다. 프랑스 정부는 24일 시위에 대비해 전국에 경찰 7만 명을 배치했다.

자유와 인권을 상징하는 나라에서 벌어지는 혼란은 우리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시민의 분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집회의 자유와 공공질서는 어떻게 함께 지킬 것인가. 무엇보다 정치가 제 역할을 했다면 갈등이 이 지경까지 커졌을까.

거리의 분노에는 이유가 있다

AP 보도에 따르면 이번 시위는 지난달 파리 인근 학교의 인력 부족에 대한 항의에서 시작돼 교육 여건과 생활비 문제를 둘러싼 더 큰 움직임으로 확산됐다.

이 과정에서 주목할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이다. 열심히 일해도 지출을 감당하기 어렵고, 자녀가 다니는 학교의 여건마저 나아지지 않는다고 느낀다면 정부의 설명은 설득력을 잃는다. 국가가 제시하는 경제지표와 시민이 경험하는 현실 사이에 간격이 커질수록 불신도 깊어질 수 있다.

그렇다고 이번 사태 전체를 하나의 원인으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 참가자의 요구와 행동은 서로 다르다. 교육 문제를 말하는 학생, 생계를 걱정하는 노동자, 폭력에 가담한 사람을 같은 집단으로 취급하면 정확한 진단도 해법도 어려워진다.

정당한 항의가 폭력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집회와 시위는 시민이 권력에 목소리를 전달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정부가 듣기 불편한 요구라는 이유로 이를 억누른다면 민주주의는 약해진다.

그러나 상점을 약탈하고 타인의 재산을 파괴하는 행위에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생계가 어려워 거리로 나온 사람의 호소가 또 다른 사람의 생계를 무너뜨리는 구실이 될 수는 없다.

피해 상점의 주인과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 역시 보호받아야 할 시민이다. 폭력으로 평화적 참가자의 요구가 가려지고 사회적 지지가 약해진다면, 그 피해는 시위가 해결하려던 문제에도 돌아간다.

정부는 평화적 참가자를 보호하면서 구체적인 위법행위를 가려 대응해야 한다. 공권력 행사 역시 필요한 범위에 머물러야 하며, 부당한 행사가 있었다면 검증받아야 한다. 법 집행의 신뢰는 엄정함과 절제에서 함께 나온다.

질서 회복 이후의 답이 있어야 한다

경찰력으로 당장의 충돌을 막을 수는 있다. 그러나 생활의 어려움과 정책에 대한 불신까지 해소할 수는 없다.

필자는 프랑스 정부가 교육 현장의 부족한 인력과 시설을 어떻게 개선할지, 생활비 부담을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덜어줄지 구체적인 일정과 재원을 제시해야 한다고 본다. 학생·노동계와의 대화도 만남 자체보다 합의한 내용의 이행 여부를 공개하는 데 무게를 둬야 한다.

재정의 한계도 정직하게 설명해야 한다. 모든 요구를 수용하겠다는 약속은 지속하기 어렵다. 지원이 시급한 계층과 서비스를 정하고, 그 비용을 어떻게 마련할지 밝혀야 한다. 정책을 바꾸면서 누가 부담하고 누가 보호받는지 설명하지 않으면 개혁의 필요성도 시민을 설득하기 어렵다.

피해 상인에게는 신속한 피해 조사와 보험·복구 지원 안내가 필요하다. 질서를 회복한다는 말에는 무너진 일상을 다시 세우는 책임도 포함돼야 한다.

우리 정치도 돌아봐야 한다

프랑스와 한국은 제도와 사회적 배경이 다르다. 프랑스의 상황을 곧바로 한국의 미래라고 말하는 것은 성급하다.

다만 생활의 어려움이 쌓이는 동안 정치가 상대 진영을 공격하는 데만 몰두하면 시민의 신뢰가 약해질 수 있다는 점은 새겨야 한다. 시민의 요구를 듣는 일과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지키는 일,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는 일과 폭력을 막는 일은 모두 정치의 책임이다.

프랑스 사태를 보며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어느 편이 이기는가만이 아니다. 시민이 폭력 없이 목소리를 내고, 정부가 그 요구에 책임 있게 답하며, 누구나 안심하고 일상을 이어갈 수 있는가다.

민주주의의 힘은 갈등이 없다는 데 있지 않다. 갈등을 듣고 조정하며, 법과 제도 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신뢰에 있다. 지금 프랑스에 필요한 것도, 우리가 지켜야 할 것도 바로 그 신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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